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침공 (문단 편집) ==== 폴란드의 입장 ==== 하지만 이건 조금만 살펴봐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영토적인 면에서 봐도 단치히 자유시가 독일로 넘어가면 사실상 회랑의 폭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영해]]의 폭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독일 뿐 아니라 폴란드도 단치히/그단스크를 자국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 그단스크에 폴란드의 소규모 군대가 주둔하며 세관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히틀러의 요구대로 하면 그 세관을 폴란드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1938년 10월 말에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리벤트로프]]는 폴란드 회랑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를 포함해서 그단스크를 독일에 돌려주고 대신 단치히 지역에서 폴란드에게 무상으로 항구를 제공하고 또 국경선을 공동으로 지키면서 불가침 협정을 25년으로 연장하는 안에 합의하여 독일과 폴란드의 모든 이견을 일거에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 >- 히틀러 평전 2권 P217, 이언 커쇼 통행권은 우습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회랑 통행권을 독일에게 부여하면 앞서 언급한 그디니아를 포함해서 사실상 회랑 전체의 통치권을 상실해 버린다. 회랑의 철도 치외법권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철도로 독일군과 민간인이 제집 드나들듯이 폴란드 회랑을 드나들 것이 뻔하며 철도 부지가 사실상 독일의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도 있다. 새로 건설된 그디니아의 물동량이 그단스크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그단스크도 여전히 폴란드의 무역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38년]] 당시 폴란드 [[수출]]에 있어 46.1%의 폴란드 제품이 그디니아를 경유했지만 동시기 그단스크도 전체 수출품의 31.6%가 경유했던 무역항으로 전체 폴란드 수출에 있어 여전히 1/3에 이르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틀러의 요구는 단치히 뿐만 아니라 폴란드 회랑 지대를 횡단하는 철도 부지까지 내놓으라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단순 계산상(그디니아+그단스크)으로도 폴란드 수출 물량의 77.7%가 막히게 된다. 이미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독일과의 무역 전쟁]]과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던 폴란드에게 이런 요구는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치외법권이 타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해치기 때문에 외교관이나 대사관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등 매우 좁은 범위만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위의 인용문과 같이 치외법권 수준이 아니라 폴란드 회랑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 중 단치히와 연결되는 것을 통째로 독일에게 할양하라고 적혀있다. 이러면 독일이 아주 인심을 써서 도로 1개와 철도 1개만 이 주장을 적용했다고 해도 해당 도로와 철도가 폴란드 회랑을 횡단하기 때문에 폴란드 회랑은 말 그대로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이로써 폴란드의 바닷길은 확실하게 차단된다. 원래부터 자국 국경에서의 검문 검색 및 통제권은 국가의 주권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게 무너지면 사실상 영토 통제권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의 [[유럽연합]] 같이 [[솅겐조약|자국 영토의 통행권을 민간인에 한해 타국에게 부여하는 것]]은 21세기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가능해진 것이며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직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저런 주장은 말만 그럴싸했지 땅 내놔라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얼토당토 않는 것이 그때까지 독일이 이미 폴란드 회랑 지역의 도로를 계속 사용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요구를 들이민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은 폴란드에게 폴란드 회랑을 할양하는 것과 더불어 당시 나치가 이끌던 [[방공 협정]]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때 폴란드는 독일뿐 아니라 동쪽의 소련과도 불가침 협정을 맺은 상황이었기에 이는 폴란드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이는 사실상 폴란드를 독일의 괴뢰국으로 만들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거기에 독일은 폴란드를 123년이나 [[폴란드 분할|분할 점령 통치한 국가 중 하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인해 간신히 독립한 폴란드의 입장에서는 통행권 요구를 빙자해 몇십 년도 지나지 않아서 명백한 자국 영토를 다시 뜯어가겠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그 영토가 국가 멸망 전에도 폴란드의 영토였고, 신생 폴란드에게는 유일한 해양 출구인 폴란드 회랑이라 중요성도 크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이 바로 '''[[뮌헨 협정]]의 전례'''이다. 뮌헨 협정 때 독일은 주데텐란트 할양을 대가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약속했으나, 단 몇 달만에 약속을 어기고 낼름 합병했다. 즉, 독일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고 해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전례에서 알 수 있듯이 추가 요구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독일의 외교적 신뢰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당연히 추가 요구가 나오리라고 여기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단치히를 넘겨줬을 때, 독일이 약속을 어기고 폴란드 침공을 개시한다면, 폴란드 입장에선 남은 항구가 그디니아밖에 없게 되므로 영, 프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